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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장 · 사도직의 본질 — Lesson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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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쇄신과 성찰의 사도직

하느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도직이 심판이 아니라 '쇄신'(재건)이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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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의 목표사도직이 '심판'이 아니라 '쇄신'이어야 하는 이유와, 정결·청빈·순명이 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원문 읽기 성바오로수도회 교리서 8.7, p.163–164

요한 3,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CISP 371
정결을 통하여 욕정에 이끌린 죄인들을 회복시켜라; 청빈을 통하여 탐욕에 이끌린 죄인들을 회복시켜라; 순명을 통하여 오만에 이끌린 죄인들을 회복시켜라.

함께 새기는 말

본문의 출발점은 명확합니다 — 하느님의 선교 방식은 세상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쇄신시키는 것입니다. 스승예수의 제자들은 '재건자'이신 그리스도의 선교에 동참합니다. 수도적 삶 자체가 재건의 도구입니다 — 정결로 욕정에 이끌린 이를, 청빈으로 탐욕에 이끌린 이를, 순명으로 오만에 이끌린 이를 회복시킵니다. 매체가 악에 이용되어 피해를 줄 때는 같은 매체로 맞서야 합니다(산문은 산문으로, 영화는 영화로) — 이것이 진리로 오류에, 선으로 악에 맞서는 직접적 사도직입니다.

확인해봅시다

본문에 따르면 정결·청빈·순명은 각각 무엇을 회복시키는가?

본문에 따르면 하느님의 선교 방식은 세상을 단죄하는 것이다.

"악한 매체에는 같은 매체로 맞선다"(산문은 산문으로, 영화는 영화로)는 원칙이, 오늘의 SNS·온라인 환경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 채점하지 않습니다.

성찰

나는 누군가의 잘못을 볼 때 '심판'하려 합니까, '회복'을 돕고자 합니까?

이번 주 실천

이번 주,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순간에 그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 시도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점검하기

나는 사도직이 '쇄신'이어야 하는 이유와 정결·청빈·순명의 재건적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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